2012년 05월 01일
상처투성이 : 내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왜냐고? 다 못 읽어서 그렇다.
그렇다. 다 못 읽었다. 안 읽은 것이 아니고. 못 읽었다.
읽다가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아서 못 읽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이번 달 살림에 5850원이라는 거금까지 지불하고 구입한 책이지만 나는 못 읽었다. 왜 못 읽었을까. 돈이라면 악착같은 내가 왜 멀쩡한 돈을 바닥에 버리고 말았을까. 2/3까지 읽은 이야기만 풀어놓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무래도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하의 내용은 이 작품이나 작가님의 팬인 분이시라면 되도록 보시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1. 지금은 2012년이다. 90년대 후반이 아니다. 부기팝이 등장해서 학원물의 새 역사를 쓴 그런 시기가 아니다. 흡혈귀, 무슨 마안, 능력자등등……. 이런 설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쓰면 놀림거리 밖에 되지 않는 시대다. 정 저런 소재를 쓰고 싶으면 작가가 자기 자신의 나름대로의 색깔을 입혀서 뭔가 같지만 다르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처투성이는 이런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악의? 그래, [악의]라는 개념을 넣어서 좀 다르게 보이려 했다는 노력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실패했다. 발생한 원인은 악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와서 싸우는 건 정말 흔해빠진 흡혈귀다. 무슨무슨 마안에. 도깨비도 있고. 악의라는 건 그냥 설정을 위한 설정일 뿐이었다. 악의가 없어도? 이야기는 충분히 굴러간다. 그럼 악의는 뭔가. 맥거핀이냐…….
2. 일부러 이러는 것 같긴한데, 주인공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고 잘린 목이 마구 돌아다녀도 [흠……?] 정도의 반응 밖에 없다. 날때부터 뭔가 대단한 생활을 해온 것도 아니고 그냥 흔해빠진 검정머리 남캐인 주제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별다른 동요하나 없이 체념하고 적응한다. 이건 사람도 아니고 캐릭터도 아니고 그냥 인형이다. 주인공이 찌질대면 작가님 이야기 진행하는데 피곤하고 또 어차피 적응할거, 그냥 에라이 처음부터 쿨하게 봐도 못본척하는 강철멘달 캐릭터로 만들자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진짜. 사라졌으면 좋겠다.
3. 앞의 2에서 지적한 주인공의 멘탈과도 연관된 문제. [목숨이 오가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컴퓨터 들어서 온라인 게임 하는 것은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좋다. 그래 라노베답게 여캐와의 이벤트를 만들어서 달달한 느낌이나, 마지막에 친구추가 같은 장치를 넣어서 여캐를 부각시키고 싶었겠지. 그냥 빼는 게 나앗을 것 같다. 작품 전체의 컨셉은 [어둡고] [으침하고] [기괴한] 느낌의 이능력배틀물 인 것 같은데, 좀 진지해질 것 같으면, 주인공들은 아침 밥 메뉴에 대해서 몇 페이지씩 떠들고, 좀 긴장될 것 같으면 별 재미도 없는 잡담이나 떠든다. 진짜. 도대체. 이런 잡담 왜 하는 건가? 오줌싸다가 누가 자꾸 거시기를 틀어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4. 앞에서 말했듯이 작품의 컨셉은 [어둡고] [음침하고] [기괴한] 느낌의 이능배인 것 같다. ……. 인 것 같다. 그래 그러려고 한 것 같다. 나는 잘 모르겠다. 작중 묘사에서 뭐 피가 튀고 눈알을 파이프로 후벼파고 심장을 도려내고 그걸 다시 몸에 집어넣고 뭐 그런 이야기 잔뜩 나오는데, 솔직히 하나도 안 기괴했다. 음침하지도 않고.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척 보기에도 비실비실하고 당장에 혼자 걷다가 픽 쓰러질 것 처럼 초췌한 녀석이 주먹을 불끈쥐며 [너 나한테 까불면 뒈진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진짜다. 후기에 보면 수위가 너무 높아질 것 같아서 자제하셨다고 하는데 너무 자제하신 건 아닌가 싶다. 아니 애당초 방향이 틀린 것 같다. 기괴함이나 공포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문장에서 [붉은] 이나 [피]나 뭐 이런 단어를 많이 때려박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섭지? 어때? 끔찍하지 않아? 으흐흐흐.] 라고 귓전을 때리는 것 같지만 나는 지지부진한 내용전개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 때문에 분노할 뿐이고…….
5. 이런저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대화]를 꼽고 싶다. 진짜. 무슨 대화가 이렇게 재미가 없는지 모르겠다. 독자가 책을 펴고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여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백]이 있다는 건 [대화]가 많다는 것이고, 그 말인 즉 [대화] =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독자에게 암묵적으로 새겨져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듯 재미있어야할 대화가……. 휴. 평소에 내가 내 친구와 주고 받는 대화, 내 어머니 아버지, 교수님과 주고 받는 대화도 이것보다 재미있겠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주고 받는 대화도 그렇고 아니 애당초 대화가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가 의식의 흐름으로 쓴 소설을 읽어도 이거보다는 재미있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릴 것 같은 뻣뻣한 대화. 이게 진짜 제일 심했다. 앞의 1~4가 마음에 안 들어도 대화가 통통 튀었으면 참고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결론은 하차했다.
진짜 내가 책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경우는 이게 처음인 것 같다. 이런저런 작품도 많이 쓰신 분인데……. 내 취향에는 영 아닌 것 같았다. 내 취향에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 그럴 것이다. 아마도.
1/10
내 개인적인 취향을 엮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안 사시는 게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어디까지나 취향 이야기다.
# by | 2012/05/01 20:43 | 서가 | 트랙백 | 덧글(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