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맥 맥카시


 세상은 내게 호의적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누구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런 환상은 깨지기 마련인데, 나같은 경우에는 좀 빠른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창 친구와 동네 오락실에서 ―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 오락실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다. 유행하던 격투게임을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그것도 부모님 몰래 한다는 그런 일탈감이 나름 스릴로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또 그 시절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친구들의 이동 수단은 기본적으로 자전거였다. 나는 정말이지 사시사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집 앞 슈퍼에 심부름을 가더라도 괜히 자전거를 타고 먼길로 빙둘러가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두가지 유희가 결합한 '자전거 타고 오락실 가기'는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도 그렇게 평범하게 내 인생 최대의 유희를 즐기고 있던 날이었다. 신나게 친구들과 오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락실 앞에 주차해두었던 나의 애마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그런데 이게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늘 가던 오락실이었지만, 있어야 할 내 자전거가 없는 이 장면은 마치 다른 세상의 풍경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눈앞의 상황이 서서히 머리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도둑맞았다. 누가 훔쳐갔다.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한 순간 나는 펑펑 울며 거리를 헤멨다. 경찰이니 뭐니 그런 생각은 전혀 안들었고 그냥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엉엉 울었다.
 세상은 내게 호의적일 것이다. 적어도 내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절망이나 고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어린 시절 내가 그저 울며 헤메기만 했던 행동의 기저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착한 이 세상이 내게 이럴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 좀 울게. 그럼 넌 나에게 착한 녀석이니까, 내 자전거를 돌려주겠지? 그럴거지? 


 텍사스의 황야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메마르고 차갑고 어둡다. 플롯과 주제는 물론이고 문장에서도 이런 풍미가 진동한다.
 작중에서 그나마 선한 역할인 캐릭터는 그럴싸한 저항을 하긴 하지만 단지 그뿐이고 결국엔 죽는다. 마누라도 죽는다. 특히 마누라가 죽는 부분은 이 작품에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안톤 시거는 결코 그 여자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죽였다. 마누라에게 안톤 시거는 마치 일종의 운명과도 같은 존재다. 사악함과 강대한 폭력을 지녔지만, 합리와 논리는 없다. 안톤 시거가 보여주는 이 행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상당수의 폭력이 보여주는 특징과 비슷하다. 그냥 죽였어요. 그냥 그랬어요. 화가 나서 그랬어요. 욱해서 그랬어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벌어지는 흉악범죄. 그것이 만연한 사회. 참으로 안톤시거 같은 세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작품에서 표현상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시 모조리 생략당한 부호들이라 할 수 있다. 이게 사실 굉장히 메마르고 건조한 느낌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서술 이외의 것은 철저히 배제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물의 행동을 묘사하지만 그 행동에 대한 인물의 감정을 부연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CASE1
「 A는 B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B의 머리통이 터지고 사방으로 살점이 튀었다. 피비린내가 방안에 진동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구역질을 했겠만, A에게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일상적인 장면이었다. 차라리 그에게는 피가 묻어 더러워진 구두에 더 신경이 쓰였다. 더러운 것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손수건을 꺼내들고 구두를 닦았다. 그리고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유유히 사라졌다. 」


 이 장면을 이 작품에서 쓰인 스타일로 바꾸면 대충 이렇게 될 것이다.

CASE2
「 A는 B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B의 머리통이 터지고 사방으로 살점이 튀었다. A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구두를 닦고는 방을 나섰다.」


 둘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전자는 행동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후자는 정말 말 그대로 행동만 나열하고 있다. 이 작품처럼 전체적으로 하드보일드한 느낌이 진동하는 작품이라면, 이런 식의 서술도 멋스럽다. 하물며 코맥 맥카시 수준의 거장이라면 훌륭한 문학 기법이 되어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수준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썩 친절한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장면 장면을 이런 식으로 구성해뒀다가는 독자가 같은 문단을 몇번씩 읽어야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CASE1에서 A의 인물상은 명확하다. 사람을 총으로 쏴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 구두가 더러워진 거나 걱정하는 냉혈한이다. 한글만 읽을 수 있다면 이 내용을 모를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CASE2, 즉 이 작품에 쓰인 스타일의 서술에서는 이런 맥락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한 단계 더 깊이 사고해야 A라는 인물의 잔혹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훈련된 독서가라면 전혀 문제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더욱 집중력을 요구하는 서술 스타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읽으면 다소 불친절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 작품이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마저하자.
 결국 내 자전거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님께 혼이 났고, 뚜벅이로 전락한 나는 한동안 친구들의 자전거 뒷자석에 앉거나, 친구들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대신 운전해주는 대리 기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참 얼마나 미련한 녀석인지, 가끔 그 오락실 앞으로 가서 내 자전거가 돌아오지는 않았을까 찾아보기도 했었다. 당연히 자전거는 없었다. 기적처럼 내게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 주는 일 따위, 이 세상은 하지 않는 것이다. 
 벨이 바라보는 세상도 비슷하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 넘쳐나고, 무고한 사람들이 어이없는 일들로 죽어가지만, 단지 그 뿐이다. 말 그대로 So What? 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자전거는 돌아오지 않고, 무고한 사람은 죽고, 범죄자는 도망친다. 정의는 승리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굴러가고 사람은 살아간다. 코맥 맥카시는 마치 한 편의 다큐처럼 펼쳐진 이 작품을 통해서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by 명상 | 2015/06/29 23:49 | 서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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